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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을 읽는 사람, 벤야민

by 바람달빛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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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1892~1940)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문예이론가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을 주제로 쓴 글들을 영국의 벤야민 연구자인 에스터 레슬리(Esther Leslie)가 2015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완성했다. 레슬리의 긴 머리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벤야민이 사진에 관해 쓴 7편의 글을 실었다. 문예 주간지 기사와 서평,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글, 친구 부부에게 보낸 편지 등이다.
어른 손 크기의 작고 얇은 책이다. 물리적 겉모습과 달리 내용을 단박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을 잘 읽는 사람이었던 벤야민에게 접근하기 쉽도록 가이드 해주는 에스터 레슬리 교수의 표현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쉽게 찍고 보는 시대다. 사진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표현 양식이 되었다. 내가 원한다면 실재하는 대상의 완벽한 재현, 기록이 가능하다. 내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쉽게 찰칵 찍으면 내가 원하는대로 이미지를 얻는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든 못 받든, 좋아요를 얼마나 받는지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현재 우리는 사진을 문자와 함께 SNS에서 소통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사진은 소통수단으로 문자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나는 한글로 일기를 쓴다. 사람들은 언어로 아름다운 시, 에세이, 소설을 쓰고 문학 작품을 만든다. 언어는 예술을 만드는 매체, 도구다. 
언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어떤 어휘를 쓰고 문장을 구사할 때 나다운가. 나는 어떤 어조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는가.
사진을 언어처럼 문자처럼 바라보게 되는 요즘이다.
사진에 관한 사유를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책 페이지에 따라 옮겨본다.

2.  시선이 멈췄던 문장들

27. 사진에 찍히는 현실은 눈이 보는 현실과는 다른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에는 눈이 볼 수 없는 층위들, 곧 사진이 없으면 지각될 수 없는 층위들이 있다.
36. 현실의 발견이 사진의 사명이다.
37. 사진이 진실을 전달하는 순간도 있고 사진이 거짓을 폭로하는 순간도 있지만, 사진이 피사체의 유의미한 면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사진 기술에는 표층을 충실히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데, 표층은 심층과 다를 수도 있고 심층을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46. 카메라는 순간 안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시간에 충격을 가한다.
47. 아무리 새로운 순간도 사진에 찍히면 역사적 기록이 된다는 것, 이것이 사진의 운명이다. 현재라는 한순간의 이미지는 역사를 통해 극복될 수 있고, 사진은 기억의 부속물이 될 수 있다.
48. 벤야민에게 기억이란 위기의 순간에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는 그 무엇이다.
50. 현재의 사건들 중에는 과거가 다시 들려주는 메아리인 듯이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다.
51. 기억과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지각되는 정보보다 많은 것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하고 기록한다. 시간이 흐른 후에 검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억이 뒤늦게 이해로 발전하는 것은 감광판에 닿은 찰나의 시간이 뒤늦게 사진으로 현상하는 것과 흡사하다.
62. 생의 표층을 복제하는 것은 생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데올로기.(나치즘이 사진을 포로로 삼고 오용하며 정치의 예술화를 꾀함)
아그파의 모회사 IG파르벤의 홍보 책자<<회사 소개>>(1938)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더 큰 삶을 사는 것”
71. 정치가 사진을 프로파간다로 오용할 가능성도 있다. 사진이 쇠락할 가능성도 있다. 압제 세력이 사진을 오용하면서 피사체/국민을 학대할 때, 사진이 동시대적 활력을 잃고 압제 세력과 한편이 될 가능성도 있다.
121. 복제를 통해 대상의 일회성을 극복하고자 한다.
124. 편견에서 자유로운, 그야말로 대담한 관찰이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관찰. 대상과의 진정한 합일을 통해서 진정한 이론이 되는 섬세한 경험론이 있다. 
128. 복제 기술이란 궁극적으로 축소 기술이다. 사람들에게 작품을 지배하는 힘, 곧 작품을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이용할 힘을 주는 것이 바로 복제 기술이다.
132. 유행이라는 조명이 계속 바뀌는 덕에 겨우 그 형질을 유지하는 창조라는 녀석(모순이라는 아버지와 모방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은 결국 물신으로 전락한다. 창조적인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실은 유행하는 사진을 찍는다는 뜻이다.
136. 사진가(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나 제물의 창자가 놓인 모습으로 미래를 점치던 고대 예언자의 후예)는 자기 사진에서 범행을 밝히고 범인을 가리켜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미래의 까막눈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찍은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진가도 똑같은 까막눈이 아니겠는가? 미래에는 사진 설명글이 사진의 본질적 요소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174. 접사나 확대 같은 사진술은 가장 친숙했던 것들, 가장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실은 이미 변형을 겪은 것들이자 또다시 변형될 수 있는 것들임을 보여 줄 수 있다.
사진에 찍힌 자연은 맨눈에 보이는 자연과는 다른 자연이다. 매개가 생길 때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던 곳에서 새로운 세계들이 떠오른다. 시지각이 다시 태어난다.
196. 사진이 개체에 최적화된 지식이라면, 지도는 총체에 최적화된 지식이다. 우리가 이 도시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이 두 비가시광선으로부터 나왔다.
231-232. 벤야민은 진실이 작고 하찮은 것들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작고 하찮은 것들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힘이 사진에 있다고 믿었다. 
237. 사실 성분은 시간이 갈수록 도드라지는 데 비해 진리 성분은 항상 깊이 묻혀 있다 보니, 마치 사실 성분과 진리 성분이 처음에는 하나로 결합돼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 따로 갈라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채롭고 생소한 사실 성분들의 의미를 밝히는 일이 모든 후대 비평가의 예비 작업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241. 벤야민에게 사진은 인식의 훈련장이자 혁명의 시험대였다.
사진이 삶의 일부가 되었을 때 삶은 변하고 있었고, 벤야민은 삶이 더 변할 수 있다는 데 내기를 걸었다. 그가 사진에 ‘혁명적 사용 가치’가 있을 가능성, 사진이 사회의 해체와 재건에 일조할 가능성을 구상해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3. 정리

사진에 대한 벤자민의 선구적 사유를 레슬리 가이드에 따라 읽어 봤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복제를 통해 대상을 우리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 사진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기 보다 예술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시지각이나 언어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가시화하는 작업이 시각 예술이다. 붓, 펜 대신에 스마트폰(카메라)으로 개인의 예술 창조가 쉽고 빠르게 가능한 세상이다.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까 혼탁해질까.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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